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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고3 모의고사 출제-김낙행-기취서행-작품-해설-전문-줄거리-내용-핵심정리-분석

국어모의고사사전

by 국어벅스 2023. 6. 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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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고3 모의고사 기출 고전수필-김낙행, 기취서행

 기취서행(記鷲棲行)(김낙행)은 '취서사에 다녀와서 기록하다' 뜻으로, 글쓴이의 취서사에 가서 겨릅을 구한 경험을 통해 얻은 '염치'에 관한 깨달음을 전달하고 있는 고전 수필이다. 현실적 이욕 앞에서 의리를 몰각한 채 욕심에 이끌린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고 반성하는 성찰적 태도가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기취서행(記鷲棲行)」을 통해 냉엄한 현실에 맞서 김낙행이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고 다독이며 살아갔는지에 살펴볼 수 있다. 그는 처사의 삶으로서, 학자로서, 사대부로서의 학문적 이상만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이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선비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현재 상황에 발맞춰 나가는 처신을 선택했다.

 

(참고자료)

정시열, 구사당 김낙행(九思堂 金樂行)의 유문 연구遺文 硏究)-저자에 면모에 대한 고찰, 한국사상문화학회(2015)

 

2023년 6월 고3 모의고사-기취서행-김낙행-작품해설-작품분석-줄거리-정리

 

 

 

김낙행 <기취서행> 작품해설- 선비로서의 의리 vs 생활인으로서 이욕

  「기취서행」은 염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김낙행은 껍질을 벗긴 삼대인 겨릅을 구하고자 취서사를 방문했다. 그는 몰려온 사람들과 뒤섞여 한바탕 난리를 치른 후 이 글을 썼다. 현실적 이욕 앞에서 염치를 몰각한 채 욕심에 이끌린 행동을 했던 것이다. 자신의 배움에 반하는 이러한 행위가 스스로 치욕이라고 밝혔듯이 부끄럽고 충격적인 것이었다. 글쓴이에게는 잠시나마 잃어버린 자존을 회복하기 위한 성찰의 장이 필요했다. 탐욕 앞에서 놓쳐 버린 염치를 돌아보는 자기 고백의 글, 「기취서행」은 이런 과정 속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기취서행」은 욕심과 염치에 관한 글로서 생활인으로서의 구사당의 삶이 녹록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내용을 보면 껍질을 벗겨낸 삼대인 겨릅을 구하고자 찾아간 취서사에서 본의 아니게 사람들과 이전투구(泥田鬪狗)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이 주를 이룬다. 그는 이 사건을 통해 한 순간의 방심으로 평소의 의리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확인했다.

 

 이윽고 취서사에 도착하니 근방 마을의 아래 위에서 모여든 자가 거의 승려들 수와 맞먹었는데, 모두 겨릅 때문에 온 자들이었다. 좌우에서 낚아채 가며 많이 가지려 다투고, 시끌벅적하게 뒤섞여 밟아 대어 곧 시장판을 만들었으며, 가져감이 많고 적음은 그 힘의 강약을 따랐으나 승려들은 참견하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해서 종도 없는 자는 승려들을 나무랐다. 심지어 혹 매질을 하기까지 하였으나 또한 얻을 수 없었다. ...(중략)... 나는 마음 속으로 민망하게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 속에 가 있었기에 의리를 이욕에 빼앗겨서 초연하게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였다. 상사공의 힘으로 수십 묶음을 얻어 햇빛에 말려 보관할 수 있었으니, 다 상사공이 지시하고 시켜주신 덕분이었다. 스스로 헛걸음을 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멍하기가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대취했을 때를 되짚어 생각하는 듯하였다. (본문 내용)

 

 글쓴이는 탐욕에서 벗어나 본심을 회복했을 때의 느낌을 술에 취했다가 막 깼을 때에 비유했다. 몰려든 사람들의 아침저녁 공양과 우마에게 꼴을 먹이는 일이 분주히 이루어지는 가운데 모두가 이욕에 정신을 빼앗겨 자신의 마음을 돌보지 못했다.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겨릅을 구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취서사에서 그는 숨어 있던 인욕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경험을 하게 되자 당황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다. 글쓴이에게 있어 자신의 이런 모습은 자못 충격적이었던 듯하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번뇌에 휩싸인 채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반성은 자신을 비하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 학문을 하는 선비로서 의리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동시에 가정의 대소사를 챙겨야 하는 가장이라는 점을 잊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상에 치우치는 일 없이 언제나 현실에 바탕을 둔 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을 지켜나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기취서행」의 작성은 글쓴이가 선택한 자기 성찰의 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 발을 딛고 직접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던 글쓴이의 삶은 학문적 이상만을 추구하는 고고한 삶과는 분명 거리가 있었다. 그는 생활 속에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잘못을 깨닫고 뉘우치는 가운데서 자신의 존재 의의를 확인했다. 이같은 고백을 통해 그는 자신의 품위를 지키고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다음 예시문은 「기취서행」의 후반부에 해당한다.

 

 상사공은 청렴하고 정직하여 주고받음이 구차하지 않다. 거처하는 집 아래채가 세 칸의 초가집이니, 마땅히 겨릅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막 삼계서원 원장이 되었는데, 취서사가 바로 삼계서원에 귀속된 절이었다. 그때 서원의 노비가 개인적으로 취서사에 가서 머물고 있는자가 서너 명 있었으니, 진실로 가지려고 하면 힘이 없을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도 담담하게 한마디도 간섭함이 없었으니, 그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를 비난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나를 위하여 저와 같이 마음과 힘을 써 주신 것은 다만 나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서일 따름이다. (본문 내용)

 

 이 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글쓴이는 염치와 의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담배를 얻어 피지 않겠다고 다짐한 작품인 「남초설(南草說)」에서 자잘한 행동을 조심하지 않다가 큰 덕에 누를 끼친다는 자경(自警)의 글구를 남기기도 했다. 가까운 사이에 담배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 우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이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고 쌓이다 보면 의리를 해친다는 점을 그는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성품이 이러했기에 취서사에서 평상심을 잃은 본인의 처신이 꺼림칙할 수밖에 없었다.

 글쓴이는 처숙부인 상사공(上舍公)과 함께 취서사에 갔으며 상사공의 배려로 겨릅을 구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취서행 후 그의 마음은 여러모로 불편했다. 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다는 맹자의 말에 비추어 부끄러움이 많았는 데다가 동행했던 상사공에게도 면목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구사당은 변명하거나 자포자기하지 않고 지난 행실을 돌아보는 글을 통해 스스로를 추스르고자 했다. 그는 이러한 고백을 통해 현실과 이상의 경계에서 보다 철저한 수신(修身)을 다짐해 나갔으며, 이는 망실(亡失)된 자존감의 회복으로 이어졌다.

 

 

김낙행 <기취서행> 작품 전문 줄거리 내용

기취서행 모의고사 출제 본문

 

몇 칸의 집을 수선하려 함에, 아내가 취서사로 들어가 겨릅*을 구해 오길 권하였다. 유택은 안 된다고 하고, 유평은 해 보자고 하는데, 나도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절은 기와를 쓰기에 겨릅은 그다지 아끼는 것이 아니고, 다만 민간의 요구와 요청에 응하는 것이기에, 이를 요구하더라도 의리를 심히 해치지 않을 듯하였다. 그래서 다시 의견을 널리 구해보지 않았다.

마침 처숙부 상사공이 약을 지으려고 취서사로 가게 되었는데, 내가 가고자 함을 알고 따르게 하였다. 대개 공 또한 안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이윽고 취서사에 도착하니 근방 마을에서 모여든 자가 거의

승려들 수와 맞먹었는데, 모두 겨릅 때문에 온 자들이었다. 좌우에서 낚아채 가며 많이 가지려 다투고,시끌벅적하게 뒤섞여 밟아 대어 곧 시장판을 만들었으며, 가져감이 많고 적음은 그 힘의 강약에 따랐으나 승려들은 참견하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늦게 도착하여 종도 없는 자는 승려들을 나무라며, 심지어 가혹한 일을 하기까지 했지만 또한 얻을 수 없었다.

‘나’가 아내의 권유로 취서사에 겨릅을 구하러 감.

(중략)

나는 마음속으로 민망히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 속에 가 있었기에 의리를 이욕에 빼앗겨서 초연히버리고 돌아오지 못하였다.상사공의 힘으로 수십 묶음을 얻어 햇빛에 말려 보관할 수 있었으니, 다 상사공의 도움 덕분이었다.

스스로 헛걸음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집으로 돌아오자 멍하기가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잔뜩 취했을 때를 되짚어 생각하는 듯하였다.

내 아내는 비록 원대한 식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내가 항상 곤궁함 때문에 치욕을 입을까 걱정하였으니, 가령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반드시 나의 행차를 권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평도 또한 마땅히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사공은 청렴하고 정직하여 주고받음이 구차하지 않다. 거처하는 집 아래채가 세 칸의 초가집이니, 마땅히 겨릅이 필요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막 삼계 서원 원장이 되었는데, 취서사가 바로 삼계 서원에 귀속된 절이었다. 그때 서원의 노비가 개인적으로 취서사에 가서 머물고 있는 자가 서너 명 있었으니, 진실로 가지려고 하면 힘이 없을 걱정이 없었다. 그런데 담담하게 한 마디도 간섭함이 없었으니, 그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를 비난하였을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나를 위하여 저와 같이 마음과 힘을 써 주신 것은 다만 나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서일 뿐이리라.

▷ 취서사에 가서 겨릅을 구해 온 ‘나’

맹자는“궁해도 의義)를 잃지 않는다”하였고, 이극은 “궁할 때에 그 해서는 안 될 일을 살펴본다.” 하였다. 나는 궁함 때문에 이미 스스로의를 잃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고, 또 어른에게까지 폐를 끼쳤으니 참으로 부끄러워할 일이다. 이미 뉘우칠 줄 알았으니,이후에는 마땅히 조심해야겠기에 이를 갖추어 기록하고, 또 유택이 나를 아껴 약이 되는 유익한 말을 했음을 드러낸다.

‘나’의 반성과 글을 쓰게 된 동기

- 김낙행, 「기취서행」-

* 겨릅 : 껍질을 벗긴 삼대

 

기취서행 전문 현대어 풀이 

 

 내 장차 서까래 몇 개를 올려 집을 지으려고 함에, 아내가 권하기를 취서사(鷲棲寺)에 들어가서 겨릅대를 구해 오라고 하였다. 유택(幼宅)은 안 된다고 하고, 유평(幼平)은 얻어와도 된다고 하는데, 내가 또한 스스로 생각해 보니, 절집에서는 기와를 덮기 때문에 겨릅대를 그다지 아낄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절에서는 민간에서 구하거나 청하는 것에 응하는 것뿐이어서, 겨릅대를 요구하더라도 도리를 심하게 해치지는 않을 듯하였다. 그래서 다시 의견을 널리 구해 보지는 않았다. 마침 처숙부 상사공(上舍公)께서 약을 조제하려 취서사로 가시려 하였는데, 내가 그 절에 가려 하는 것을 아시고는 따르게 하였다. 이는 대개 공도 또한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윽고 절에 도착하니, 가까운 마을의 위아래 여염집에서 모여든 자가, 거의 절의 스님들의 수와 엇비슷했다. 모두 겨릅대 때문에 온 자들이었다. 좌우에서 움켜잡고 끌어당기며 많이 가져가려 다투고 있었기에, 시끌벅적하고, 북적북적하여 마치 저잣거리 같았다. 가져가는 것이 많거나 적음은 그 힘의 강약에 따랐으나, 스님들은 여기에 관여하는 바가 없었다. 더군다나 종도 없이 늦게 도착한 어떤 자는 스님들을 꾸짖기까지 하였다. 혹은 심지어 매질하는 자도 있었으나, 또한 얻어 가지 못하였다.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찾아온 이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이들이 끌고 온 소와 말에게 꼴을 먹이느라 분주하였기에 어수선함과 어지러움을 이겨내지 못하였다. 이른바 삼보 중의 하나인 스님들이 사람들을 응대하느라 분주하여 조금도 쉴 겨를이 없었다. 이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소란함이 겨우 끝이 났다.

 나는 마음속으로 민망하게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 절에 가 있었기에, 이익을 탐하는 욕심에 마땅한 도리를 빼앗겨 있었다. 그래서 초연하게 욕심을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였다. 다만 상사공의 힘으로 수십 묶음의 겨릅대를 얻었기에, 햇빛에 말려 거두어 둘 수 있었다. 이는 상사공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따른 덕분이었다. 나는 스스로 헛걸음을 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기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멍하기가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 같았으니, 크게 취했을 때를 돌이켜 생각하고 있는 듯하였다.

 조강지처인 내 아내는, 비록 크고도 먼 식견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내가 곤궁함 때문에 수치와 모욕을 당할까 걱정하곤 했다. 만일 내가 이와 같을 일을 겪을 줄 알았다면, 나의 행차를 반드시 권하지 않았을 것이고, 유평도 또한 마땅히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사공께서는 청렴하고 정직하시기에 주고받음이 구차하지 않은 분이다. 그런데 거처하는 집 아래채가 세 칸의 초가집이니, 공께서도 마땅히 겨릅대가 필요하였을 것이다. 또 막 삼계서원(三溪書院)의 원장이 되셨는데, 취서사가 바로 삼계서원에 속한 절이었다. 그때 서원의 노비 중에 사사로이 취서사에 가서 머물고 있는 자가 서너 명 있었으니, 진실로 겨릅대를 얻으려 하셨다면, 굳이 힘을 써야 할 걱정이 없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담담하게 간섭하는 말 한마디가 없으셨으나, 마음속으로는 나를 반드시 못마땅하게 여기셨을 것이다. 그런데도 애써 나를 위하여 저렇게 마음과 힘을 써 주셨으니, 다만 나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맹자(孟子)는 “곤궁해도 의를 잃지 않는다.”라 하였고,이극(李克) “곤궁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일을 살펴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하지만 나는 곤궁함 때문에 이미 스스로 도리를 잃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고, 또 어른에게까지 폐를 끼쳤으니 참으로 부끄러워할 만한 일이다. 그래도 이미 뉘우칠 줄 알았고, 이후에는 마땅히 조심할 것이기에, 이것을 갖추어 기록한다. 또 유택이 나를 아껴 약이 될 만한 유익한 말을 했음도 이 글에 아울러 드러낸다. (출처: 신영산 옮김)

- 『구사당집(九思堂集)』

 

 

 

김낙행 <기취서행> 핵심정리

• 갈래: 고전 수필

성격: 반성적, 성찰적, 교훈적, 의지적

• 지은이: 김낙행(金樂行, 1708~1766) 김낙행은 136제의 시 외에도 제문·서찰·서발·논변·잠명류에 속하는 다양한 갈래의 글을 남겼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처사의 신분으로 내성인고(內省忍苦)하며 한평생을 살다간 글쓴이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글쓴이의 태도: 가난 때문에 이욕을 추구하다가 의리를 잃은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있다. 

주제: 이욕에 사로 잡혀 의리를 잊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

표현

- 비유적 표현: 직유법(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잔뜩 취했을 때를 되짚어 생각하는 듯)

- 성현의 말을 인용함: 맹자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않는다.”, 이극은 “궁할 때에 그 해서는 안 될 일을 살펴본다”, 인용을 통해 자신의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 

-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여 유학자로서의 신념을 드러내고 있다. 

이해와 감상

 글쓴이는 껍질을 벗긴 삼대인 겨릅을 더 가지고자 사람들과 이전투구(泥田鬪狗)하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이욕에 마음을 빼앗겨 의리를 지키지 못했던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글쓴이는 탐욕에서 벗어나 본심을 회복했을 때의 상태를 대취했다가 술이 막 깼을 때로 비유하고, 맹자와 이극이 한 말처럼 궁핍해도 의를 잃지 않으며,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살펴보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를 표출하고 있다.

 

<기취서행> 에 나타난 김낙행의 삶, 처사로서의 삶에 대한 가치관

 구사당(九思堂) 김낙행(金樂行)(1708-1766)은 경북 안동의 천전리에서 제산(霽山) 김성탁(金聖鐸)(1684-1747)의 장자로 태어났다. 학문적 성취의 토대를 마련해 나가던 김낙행에게 부친의 유배는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전환점이 되었다. 그는 한창 뜻을 펼칠 30대, 10년 간을 자신이 꿈꾸어 온 이상을 접은 채 제주도와 광양을 옮겨다니며 유배지의 부친을 시봉하는 데 온 힘을 다했다. 이러한 인생 행보가 당사자에게는 시련과 고뇌의 근원이 되었을 것이며, 그의 삶은 다양한 갈림길 앞에서 내리는 결단의 연속이었으리라는 추측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생각은 구사당이 삶의 현장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신의 가치관을 지켜나갔는지, 그 구체적인 실상을 확인하는데 도움이 된다.이처럼 김낙행이 관직에 진출해서 입신양명하는 길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던 데는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유학을 공부한 청년으로서 학문과 출사의 꿈을 단념하고, 부친을 모시기로 결정하기까지에는 나름대로 많은 번민이 있었을 것이다.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 시기에 이러한 처신을 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선택이었음에 분명하다.

불가항력적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학문을 세상에 시험해 볼 기회를 박탈당한 청년에게 돌아온 것은 현실적 유혹과 자괴감이었다. 김낙행은 갖가지 삶의 경계선 위에서 자신의 의지를 시험받는 난관에 직면해야 했으며, 스스로에 대한 긍지와 품위를 지키려는 자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노출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련에도 불구하고 그는 현실의 삶을 지속시켜 나가려는 각고의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불행한 가정사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은 김낙행의 삶에 많은 장애를 안겼다. 그는 신분상 사대부였지만 관직에 몸을 담지는 않았다. 이로 인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주눅 드는 일 없이 자애지심(自愛之心)을 갖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의 가치를 꿋꿋이 지켜나 갔다. 

 

  김낙행은 평생을 처사로서 살아갔기에 그 현실적 삶이 초라하고 왜소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현실의 삶과 가슴속 이상 사이의 뚜렷한 괴리는 그를 안분지족과 자기비하의 경계에 세워 둔 채 고민하게 하는 일이 잦았다. 하지만 김낙행은 현실의 벽 앞에서 성찰과 고뇌를 하면서도 그 속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추동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인상적인 점은 무너져가는 자신의 자존을 지키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는 길을 모색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학자로서, 사대부로서의 학문적 이상만을 추구하는 대신 자신이 현실 속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했음을 뜻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처신이 선비로서의 자존감을 단념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그것을 지키고자 현재의 처지에 맞춰 한 발짝 물러났을 뿐이었다. 김낙행은 현실과 이상의 경계선상에서 종종 어려운 선택을 해야 했다. 이와 관련된 작품인 「직석설」과 「기취서행」은 일면 자신에 대한 조소를 담고 있는 듯하나 자세히 읽어 보면 진정으로 두터운 자중자애의 결과물임을 알 수 있다. 그는 본인의 감정을 숨기거나 감추는 대신 진솔하게 속내를 드러내는 것으로 스스로를 성찰하고 위로하고자 했다. 그의 이러한 고백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불만스런 현실을 타파의 대상이 아닌 수용하고 적응해야 할 대상으로 여겼다.

 김낙행의 인생은 불가피한 선택과 달갑지 않은 일들로 점철된 고군분투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둘러싼 불리한 여건과 악조건에 굴하지 않고 본인에게 주어진 고통을 당당히 감내했다. 학문을 통한 경세치용(經世致用)의 뜻을 접고, 부친 김성탁을 위해 10년이라는 세월을 헌신했지만 부친은 끝내 적소(謫所)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그 당시 불혹에 접어든 그에게 남은 것은 못다 이룬 학문에 대한 열정과 차가운 현실이었다. 관직에 진출하지 못한 처사의 신분으로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마주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은 학문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그를 성숙하게 만들었다. 김낙행은 고난 속에서도 상실을 입에 올리지 않았으며, 가난 가운데서도 현실 논리에 휘둘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의 글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명(命)에 대한 깊은 자각과 인식이 느껴진다. 외부의 풍파가 그의 마음을 흔들지 못한 것은 그가 스스로에 대해 잘 알았기 때문이다. 

 김낙행은 ‘졸’하다는 것이 악덕(惡德)은 아니지만 정도(正道)라고 할 수도 없다는 점을 명시했다. ‘졸’의 가치는 진실성에 있다. 그는 자신의 뜻을 숨긴 채 남을 따르지 않으며, 원만하지 못하다는 평을 듣더라도 불의에 맞설 줄 아는 것이 이른바 ‘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자신의 이름인 ‘낙행(樂行)’과도 부합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이렇게 이름과 자의 뜻을 심중에 되새기고 또 그렇게 살고자 함으로써 선친의 뜻을 받들었다. 이처럼 명분과 실상이 일치하는 삶을 통해 김낙행은 문질(文質)이 조화된 인물이 되고자 했다.

 

 

 

<기취서행> 본문 분석, 문장 해설

몇 칸의 집을 수선하려 함에, 아내가 취서사로 들어가 겨릅을 구해 오길 권하였다: 아내는 글쓴이에게 취서사에 가서 겨릅을 구해올 것을 권유하였다. 

취서사(鷲棲祠): 양산시 하북면 취서산에 있는 사당. 

겨릅: 껍질을 벗긴 삼대. 삼대는 삼의 줄기.

• 나도 스스로 생각해 보니 ~ 의리를 심히 해치지 않을 듯하였다: 겨릅을 구해오는 일에 대한 글쓴이의 생각이 드러나 있다. 절에서는 겨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민간의 요구이므로 겨릅을 요청하는 것이 의리에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있다.  

• 마침 처숙부 상사공이 약을 지으려고 취서사로 가게 되었는데, 내가 가고자 함을 알고 따르게 하였다: 상사공이 취서사에 갈 때, 글쓴이와 동행하게 되었다. 상사공은 취서사에 가는 목적이 약을 지으려는 것이고, 글쓴이는 겨릅을 구하러 가는 것으로 차이가 있다.  

• 이윽고 취서사에 도착하니~ 가져감이 많고 적음은 그 힘의 강약에 따랐으나 승려들은 참견하는 바가 없었다: 취서사에는 겨릅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많고, 서로 많이 가져가려고 다투는 이전투구의 상황임이 나타나 있다. 승려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참견하지 않는 수수방관의 상황임이 드러나 있다. 

• 이전투구: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라는 뜻으로,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비열하게 다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수수방관: 팔짱을 끼고 보고만 있다는 뜻으로, 간섭하거나 거들지 아니하고 그대로 버려둠을 이르는 말. 

• 나는 마음속으로 민망히 생각하였지만, 이미 그 속에 가 있었기에 의리를 이욕에 빼앗겨서 초연히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였다: 글쓴이는 겨릅을 얻기 위해 다투는 상황에 대해 마음속으로는 민망하다 여겼지만, 그 무리 속에 있는 ‘나’ 역시 의리(사람으로서의 도리)보다는 이욕(이익, 욕심)에 마음이 빼앗겨서, 이욕을 버리고 돌아오지 못하고 결국 겨릅을 구해 왔음을 의미한다.  대립적: 의리 ↔ 이욕

• 스스로 헛걸음하지 않은 것을 매우 다행스럽게 여겼는데 ~ 마치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 잔뜩 취했을 때를 되짚어 생각하는 듯하였다: 글쓴이는 겨릅을 구하고 다행스럽게 여겼지만, 집으로 돌아와 다투어 겨릅을 구한 행동에 대해 멍하게 느끼고, ‘술에서 막 깨어난 사람’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통해 술에 취해 저지른 잘못된 행동인 것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 글쓴이의 심리 변화, ‘잔뜩 취했을 때’는 취서사에서 이전투구하며 겨릅을 구하려고 했을 때를 비유한 것이다. 

• 내 아내는 ~ 내가 항상 곤궁함 때문에 치욕을 입을까 걱정하였으니: 아내는 평소 가난 때문에 남편이 치욕스러운 일을 겪을까 염려해 왔음을 알 수 있다. 

• 가령 이와 같을 줄 알았다면~ 유평도 또한 마땅히 찬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글쓴이는 겨릅을 다투어 구한 것을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상사공은 청렴하고 정직하여 주고받음이 구차하지 않다: 상사공(처숙부)의 성품이 직접 제시를 통해 드러나 있다. 

• 그리고 막 삼계 서원 원장이 되었는데, 취서사가 바로 삼계 서원에 귀속된 절이었다: 상사공의 지위는 취서사를 지휘할 수 있는 삼계 서원의 원장임을 알 수 있다. 

진실로 가지려고 하면 힘이 없을 걱정이 없었다: 상사공은 삼계 서원의 노비 서너 명이 취서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겨릅을 구하기에 유리한 여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 그 마음속으로 반드시 나를 비난하였을 것이다: 상사공은 겨릅을 구할 수 있는 충분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으나, 노비에게 시키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 글쓴이는 겨릅에 대한 ‘나’의 ‘이욕’에 대해 마음속으로 비난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 다만 나의 곤궁함을 불쌍히 여겨서일 뿐이리라: ‘나’는 상사공이 ‘나’의 곤공함을 불쌍히 여겼기 때문에 겨릅을 구해주었다고 본다. 

 맹자는 “궁해도 의(義)를 잃지 않는다.”: 맹자의 말을 인용하여 가난하더라도 올바른 도리(의리)를 잃지 않는 삶의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 이극은 “궁할 때에 그 해서는 안 될 일을 살펴본다.”: 이극의 말을 인용하여 가난할 때일수록 해서는 안 될 일(의리)을 살펴보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 나는 궁함 때문에 이미 스스로 의를 잃어서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했고, 또 어른에게까지 폐를 끼쳤으니 참으로 부끄러워할 일이다.: 글쓴이가 부끄러움을 느끼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상사공에게 면목이 없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적 태도가 나타나 있다.

이미 뉘우칠 줄 알았으니, 이후에는 마땅히 조심해야겠기에 이를 갖추어 기록하고, 또 유택이 나를 아껴 약이 되는 유익한 말을 했음을 드러낸다: 고전 수필의 형식적 특징, 글을 쓴 동기를 제시하며 자신의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유택은 처음에 겨릅을 구하러 가지 말라고 반대한 사람으로, 그의 말이 옳았음을 깨닫고 반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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