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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5월) 고3 모의고사 출제_이호민 서호가 전문 원문 현대어 풀이 서호가 분석 서호가 해설 작품 정리

국어모의고사사전

by 국어벅스 2023. 5. 10.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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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5월) 고3 모의고사 출제 고전시가 -이호민 서호가(西湖歌)

 <서호가>는 이호민이 1595년(선조32년) 5월에 사은사(외국에 보내던 사신(使臣)) 임무를 마치고 귀국해서 서호(西湖)(지금 당인리 화력발전소가 있는 주변을 지금은 서강이라고도 부르지만 조선시대에는 서호라고 불렀음. 서호에는 마포 나루터가 있었고 1960년 경만하더라도 서해에서 잡히는 조기를 비롯하여 새우젓 등의 젓갈이 마포나루로 들어와서 매우 번창했었음. 또 서호부터 서해까지는 물의 흐름이 급하지 않고 완만하여 마치 호수와 같아서 서호라고 부른 것으로 추정됨.)의 강 언덕에 있는 자택에서 거주하면서 군은(君恩)에 감사하고 청빈하게 생활하며 주위에 전개되는 자연에 심취하였고, 임진란으로 인하여 우국일념으로 분주했던 일들을 회고하였으며 벼슬길에 나아감보다는 자연에 묻혀 살기를 추구하였다. 서호가는 길이가 긴 가사는 아니지만(111구) 작자의 심정과 정서를 간결하게 묘사한 가사 작품이다.

국문학사적인 면으로 볼 때에 16세기에 지어진 가사가 희귀하고 또 민족의 큰 비극이었던 임진란과 관계되는 가사라는 점에서도 서호가의 가치를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된다.

국문학사상 서호를 읊은 가사로는 허강(1520~1592)의 서호별곡이 있다. 이 서호별곡은 이호민의 서호가보다는 일찍 지어졌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볼 때의 허강의 서호별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배 안에서 시우들과 함께 기녀들을 거느리고 주연을 베풀면서 탄금영시(彈琴詠詩)하며 한강을 흘러내려 오는 강호한정을 노래한 것이므로, 가사 작품의 의의나 가치면으로 보거나 국문학사적인 면으로 보더라도, 이 서호가는 서호별곡보다 그 가치성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참고자료)

-진동혁, 새로 발굴된 이호민의 ⌜서호가⌟, 순천향어문학연구회(1998)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서호가 이호민

서호가 작품 해설 작품 분석

1599년(선조 32) 구미 지역 출신의 이호민이 지은 가사.  이호민의 초고 문집인 『난후사유(亂後捨遺)』에 실려 있다. 지은이는 선조 때 호종 공신이며 사후에 청백리에 올랐다. 「서호가」는 이호민이 사은사로 중국을 다녀온 뒤에 서울 마포의 서강(西江) 가 언덕에 기거하면서 임금의 은혜에 감사하고 주변의 자연에 심취한 노래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우국일념으로 분기하였던 때를 회상한 노래다. 국한문 혼용으로 표기되어 있다.

 

작가 이호민(李好閔)의 서호가

이호민(李好閔, 1553~1634)은 조선ᅠ선조(宣祖, 1552~1608) 때의 공신으로 자는 효언(孝彦), 호는 오봉(五峯)·남곽(南郭)·수와(睡窩)이다.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우고 연릉부원군(延陵府院君)에 봉해졌다. 1599년(선조 32) 동지중추부사가 되어 임진왜란 때 군대를 내어 도와준 명나라에 고마움을 올리는 사은사로 명나라에 갔다. 같은 해 5월 사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서호에 머물러 살았는데, 「서호가」는 이때 느낀 정회를 111구의 가사로 읊은 작품이다. 이호민의 초고문집(草稿文集)인 『난후습유(亂後拾遺)』에 수록되어 있다.

 이호민은 1599년(선조 32) 5월 사은사 임무를 마치고 귀국해서 서호(西湖, 지금 당인리발전소가 있는 주변)의 강 언덕에 있는 자택에 기거하였다. 군은(君恩)에 감사하고 청빈한 생활을 하면서 주위에 전개되는 자연에 심취한 기간이었는데, 이때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우국일념으로 분주했던 일들을 회고하고, 벼슬길에 나가는 것보다는 자연에 묻혀 살기를 희구하였다. 「서호가」의 첫 부분은 "기해(己亥) 윤사월(閏四月)의 용만(龍灣)의 봉사(奉仕)하여/ 오월(五月)의 도라와 복명(復命)을 하오리라/ 금곡(金谷)의 배를 타 서호(西湖)의 드로오니/ 강산(江山)은 의구(依舊)하고 풍색이 엇더하뇨/ 군은(君恩)은 그지업서 삼순(三旬)을 놀니시니/ 장하강촌(長夏江村)의 와실(蝸室)이 소조(蕭條)하야/ 시문(柴門)이 본데 업서 밤인들 다를소냐/ 발이 하 성긔니 물보기 더욱 됴타."이고, 마지막 부분은 "마음이 태화(太和)로다 강풍(江風) 쾌히 부러/ 격양가(擊壤歌) 소리예 만물(萬物)이 다 편하며/ 경성(卿星)도 도다며 경운(卿雲)도 넘놀 제/ 이 몸이 서호(西湖)의 물너셔도/ 소매를 길게 하여 조수동무(鳥獸同舞) 하노리라."이다.

서호가 작품 의의

 「서호가」는 이호민의 심정과 정서를 간결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인정받는다. 국문학사적으로 볼 때 16세기에 지어진 가사가 희귀하고, 또 민족의 큰 비극이었던 임진왜란과 관계된 가사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서호가 원문, 전문 해석, 현대어 풀이

(참고자료) 신영산 풀이

*원문은 중세국어 표기 깨짐이 발생하여 생략하였습니다. 첨부된 pdf파일을 참고하기 바랍니다.

서호가 전문 원문 현대어풀이
서호가 전문 해석
서호가, 이호민.pdf
0.15MB

<서호가(西湖歌)> 전문 원문, 현대어 풀이

기해년 윤사월에

용만관에 명나라 사신을 호송하고

오월에 돌아와 다녀온 일 아뢰었네.

금곡에서 배를 타고 서호로 들어오니

강산은 예 같은데 정취는 어떠한가.

임금 은혜 그지없어 한 달을 쉬게 하시니

긴 여름날 강마을에 달팽이집 호젓하여

사립문이 본디 없어 밤인들 닫을 소냐.

문발이 하도 성겨 물 보기가 더욱 좋다.

작은 다락에 누었으니 크나큰 온 세상을

베개 베고 누워서 다 보겠구나.

처마도 너무 짧아

석양도 들거니와 빗발도 들이친다.

임 그려 젖은 소매 볕 아니면 뉘 말리며

나라를 근심하여 타버린 가슴을

비 아니면 어찌 끌 수 있겠는가.

동서로 분주하여 밤낮을 모르더니

오늘은 어떤 날인가 이 몸이 편안하니

보리밥 늦는다고 아이야, 걱정 마라.

짧으나 짧은 밤에 꿈자리 어지러워

봉래산 제일봉에 가신 임을 만나보아

반기느라 할 말 없고 느끼노라 한숨 지어

내 서러운 하소연을 사뢰려다 못 사뢰니

비바람에 잠 깨어 일어 앉아 한숨짓고

마을 닭이 벌써 우니 할 일이 전혀 없어

문군아, 내 옷 다오, 종문아, 지팡이 다오.

저는 나귀 채찍 없이 종무를 뒤세우고

강변에 나와 걸으니 늦은 물결이 더욱 좋다.

소라 불며 고기 잡는 아이야.

술병은 무슨 일로 실었는가.

조각배를 혼자 타고 넓은 데로 저어가니

구의봉은 어디인가, 소상강이 여기로다.

두 왕비는 어디 갔나, 순임금을 뵙는구나.

남풍 노래 오현금을 눈 위에 높이 들어

해온곡을 알리오니 소리는 옛 소리라.

마음이 태평하리로다.

강바람 시원히 불어오고

격양가 소리에 만물이 다 편하며

상서로운 별들도 돋아 뜨고

상서로운 구름도 넓게 놀제

이 몸이 서호에 물러나 있어도

소매를 길게 하여

새와 짐승과 함께 춤추리라.

 

1) 이 작품이 쓰인 선조 32년(1599)으로 작자가 46세 때. 작자는 이해 명나라 사신이 귀국할 때, 행차의 호송 임무를 맡아 의주에 갔다가 5월에 한양으로 돌아온 후 잠시 말미를 얻어 서강(현재의 마포 부근)에 기거하였음. ‘용만(龍灣館)’은 조선시대 때 중국 사신을 접대하던 곳.

2) ‘금곡’은 황해도 백천군에 있던 금곡포(金谷浦). ‘서호’는 지금의 서울 당인리 발전소가 있는 서강(西江).

3) 여기서 임금은 선조임.

4)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을 달팽이 뚜껑 같은 작은 집이라고 겸양하며 표현한 것.

5) 의미 미상. 문맥상 시중드는 아이가 아침밥을 늦게 올린다는 뜻인 듯함(?).

6) 중국 전설에서 발해만(渤海灣)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의 삼신산(三神山) 중의 하나.

7) ‘문군’은 중국 한나라 때 여류문인인 탁문군(卓文君)으로 문인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내. ‘종문’과 ‘종무’는 당나라 때의 시인 두보(杜甫)의 두 아들. 문군을 아내로 종문, 종무를 아들로 두었다는 것으로 사마상여나 두보가 된 듯한 즐거움에 빠져 있음을 보여주는 구절.

8) 의미 미상. 소라를 분다는 뜻인 ‘취라(吹螺)’로 이해했음.

9) ‘구의산’은 순(舜)임금의 종묘(宗廟), ‘소상강’은 중국 호남성(湖南省)의 소수(瀟水)와 상수(湘水), ‘이비’는 순임금의 두 왕비, 아황(娥黃)과 여영(女英), ‘중동(重瞳)’은 눈동자가 겹인 것을 가리키는데, 순임금의 눈동자가 그러했다고 함. 순임금이 지방을 순시하다가 소상강가의 창오산(蒼梧山)에서 세상을 떠나자 두 왕비가 그곳으로 가서 따라 죽었다고 고사.

10) 순임금은 줄이 다섯 개인 오현금(五絃琴)을 만들어 읊은 <남풍(南風)> 시. “남풍의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수심을 풀어 주기를. 남풍의 때맞게 불어줌이여, 우리 백성의 재물을 불려 주기를.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南風之時兮, 可以阜吾民之財兮.)”곧 ‘남훈’, ‘오현금’, ‘해온곡’ 등은 순임금 때의 태평성대를 의미함.

11) 풍년이 들어 농부가 태평한 세월을 기려 불렀다는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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