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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5월) 고3 모의고사 출제_김진규 몰인설 작품 해설 작품 정리

국어모의고사사전

by 국어벅스 2023. 5. 10.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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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4월(5월) 고3 모의고사 출제 고전수필-김진규 몰인설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진규가 지은 설(說)로서, 그의 문집인 『죽천집(竹泉集)』 권6 잡저조(雜著條)에 실려 있다.

작품: 몰인설(沒人說)

작가: 김진규 (金鎭圭, 1658년 ~ 1716년)

발표: 1773년(영조 49년)

갈래: 고전산문, 고전수필, 설(說)

 해남(海男)에 관한 이야기다. 전복을 따는 잠수부가 있다. 그에게 일에 대해 묻자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전복 따는 일의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이와 함께 바다의 위험성과 추위 등 노동의 고통을 이야기한다. 그렇게 일해도 관청에 모두 빼앗겨서 남는 것이 없다. 작자가 다른 일을 권하자 잠수부는 세상 모든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농사는 농사대로, 장사는 장사대로 어렵지만 가장 어려운 것은 관직에 나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잠수는 기술이 있어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고, 힘을 합쳐 일하는 사람들이 있어 위험하지도 않다. 관청에 빼앗기고도 남는 것이 있어서 가족이 화목하게 지낸다. 다른 일에 비해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것이 잠수인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작자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에 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참고자료) 노영근, 강명관, 낯선 문학 가깝게 보기-한국고전(2013.11)

몰인설 김진규

「몰인설」  작품 해설

설(說)은 한문학의 한 갈래로서, 현실의 경험을 통해 삶의 진리를 이야기하는 양식이다. 우화(寓話)와 비슷하나 동물뿐 아니라 인간의 현실적인 경험을 다룬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몰인설」은 거제에서 전복을 따는 잠수부의 입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는 내용이다.
첫 부분은 바다 일의 괴로움과 현실에 대한 원망에 관한 것이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의 위험과 작업의 주의할 점, 그리고 추위 등 일에 관한 부정적인 설명이다. 또한 괴로운 노동의 결과물은 관청에 바치기에도 부족할 정도이다. 이는 생산량이 적다는 것이 아니라 관청에서 과다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잠수부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것은 거친 노동 환경뿐 아니라 관리들의 수탈도 주된 요인인 것이다.
이에 대해 작자는 다른 일을 해볼 것을 권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 잠수부는 세상 모든 일이 모두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농사, 장사 등 여러 가지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관직에 나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자신의 일은 이에 비해 보람 있는 것임을 말한다. 첫 부분에서 이야기한 부정적인 내용은 기술을 통해 극복되어 스스로에 대한 긍지로 변화하고 있다. 혹독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기술이 있고, 힘을 합쳐 어려움을 해결할 동료들이 있고, 노동의 대가로 화목한 가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 모든 것이 없는 일이 관직에 나아가는 일이라고 한다.
작자는 잠수부의 말을 듣고 자신의 처지가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새삼 깨닫는다. 그리곤 자신이 직업선택이 잘못되었다고까지 하고 있다. 잠수부와 작자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긍지에 찬 잠수부와 그렇지 못한 작자의 모습은 자존감(自存感)의 유무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즉, 자신의 직업에 대해 긍지를 갖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긍지로 이어진다. 자긍심을 갖고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 당당하고 힘찬 모습을 갖게 되는 것이다. 결국 이 이야기는 표면적으로 벼슬길의 어려움을 깨닫는 내용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질 것을 권하는 것이다. 이 글의 주제는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갖고 열심히 하는 것의 중요함이라고 하겠다.

 

「몰인설」 전문 현대역 작품 줄거리와 내용

전복 맛이 좋기로는 상군(裳郡, 현 거제시)에서 나는 것이 가장 맛있다. 군(郡)의 죽림포(竹林浦)에 사는 사람이 전복을 따서 파는 일을 업으로 하는데, 그 이윤이 다른 어부들보다 많다고 하였다. 포구의 사람 중에 전복을 팔러 오는 사람이 있어 내가 물었다.
“당신이 하는 일의 이득은 과연 어느 정도인가?”
“이 천한 일을 어찌 묻습니까? 바다는 죽음의 땅이고, 전복은 반드시 바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한 그물이 아닌 갈고리로 잡을 수 있으며, 반드시 바닥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숨을 멈추고 잠깐 동안 머무르며 찾아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반드시 작살로 빠르게 찔러야 이내 잡을 수 있습니다. 만약 잠깐이라도 느리게 하면 전복이 칼날을 물어 비록 힘을 다하더라도 칼을 뺄 수도 없으며, 전복은 꿈쩍도 않습니다. 서로 버티다가 시간이 늦으면 물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바다에는 사람을 잘 무는 나쁜 고기들도 많으며, 바다 속은 아주 차가워서 비록 무더위에 잠수하는 사람들도 항상 추워서 오들오들 떠니 잠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런 까닭에 십여 세가 넘으면 얕은 데서 익히다가 조금씩 깊은 데로 갑니다. 이십 세가 되어야 전복잡이가 가능하고, 사십이 넘으면 그만둡니다.

또한 잠수하는 사람은 항상 바다에 있으니 머리카락이 타고 마르며, 살갗은 거칠고 얼룩얼룩합니다. 그 처지와 모습이 일반인과 다릅니다. 다른 사람들이 동료로 삼지 않고 천하게 여기므로, 이 일의 괴롭고 천함이 이와 같습니다. 관청에 바치는 것도 그 양을 다 채우지 못하는데 어찌 이득이 있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런 즉, 혹시 병이 나면 어쩌는가? 어찌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하지 않는가?”

잠수부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으며 말하였다.
“무슨 일이 잠수부보다 편한 것이 있겠습니까. 소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농사와 상업뿐입니다. 농부도 가뭄이나 장마에 굶주리고, 상인도 남북으로 뛰어다녀 그 괴로움이 나와 같을 것입니다. 만약 군자의 일인 벼슬을 하면 편히 앉아서 녹(祿)을 먹고, 수레에 올라앉으면 따르는 무리가 있고, 금빛 붉은 빛에 아름답게 꾸민 관(冠)이 우뚝 높고, 조정에 들면 부(府)와 성(省)을 차지하고, 지방으로 나아가면 주(州)와 부(府)에 임합니다. 이것은 지극한 즐거움과 영화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또한 일찍이 들으니 아침엔 국록(國祿)을 먹으나 저녁엔 책망(責望)을 당합니다. 어제는 부(府)와 성(省)이 있었지만, 오늘은 고개 너머, 바닷가에 있습니다. 골육은 육신의 명예와 욕됨을 떠나는데, 안으로는 취하고 버리는 것에 막히고, 밖으로는 형벌에 걸리니, 능히 죽지 않고 산 자가 거의 드뭅니다. 그러니 벼슬살이의 위태로움이 어찌 이와 같지 않겠습니까?

잠수부와 같은 사람은 참으로 괴롭고 천하나, 익숙해지면 물속 깊이 들어갈 수 있으며, 들어가 살피면서 머무를 수 있습니다. 바람이 잠잠한 것을 점치고, 물결이 잠잠해지기를 살펴, 귀신처럼 다니나 발로 밟지는 않습니다. 길을 돌아다니면 잔물결을 치면서, 가벼이 물거품 위에 머무르다가 빠르게 들어갔다가 재빨리 나오니 물길의 평탄하기가 땅 위의 큰 길을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살펴보다가 찌르는 것이 빠르니 전복을 잡는 것이 고동이나 조개를 잡는 것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또 쇳소리를 울리며 물에 들어가면 사람을 무는 나쁜 고기들을 물리칠 수 있고, 불을 피워 놓아 물에서 나가면 추위에 떠는 것을 풀 수 있습니다. 관청에 물건을 바치고 다행히 남는 것이 있으면 집에 돌아가서 죽을 끓여 마누라와 자식들을 먹입니다. 먹고 힘을 내어 일을 하니 가정이 화락(和樂)합니다.


사람들은 비록 나를 천하게 여기나 나는 또한 귀하고 천함이 있는 줄을 모릅니다. 비록 그러하나 만약 사나운 바람과 거친 물결을 만나면 내가 또한 그 어려움을 먼저 보고 배를 돌려 항구로 돌아옵니다. 때를 기다려 일하고, 서로 도와 힘을 내므로 위태로이 물에 빠지지는 않습니다.


농사와 장사도 어려우니, 진실로 이 일을 버리고 다른 일을 할 수는 없습니다. 지극한 즐거움과 영화로움에 나아감에 견주어보면 다른 사람이 먹여주는 것을 먹는 것이 내 힘으로 먹는 것보다 나으며, 사람을 다스리는 것이 내 일을 다스리는 것보다 나으며, 부귀영화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내 천한 일에 욕됨이 없는 것보다 낫겠습니까? 하물며 안으로 막히고 밖으로 죄에 걸려 죽어가는 것이 때를 기다려 서로 힘을 합하여 물에 빠지는 위태로움에서 벗어나는 것보다 더 낫습니까?

내가 또 무슨 병이 있겠습니까? 내가 고을에서 보니 우리 무리들은 그 즐거움이 항상 편안하며, 벼슬하는 사람들이 꾸짖으며 와서 몸을 묶더라도 그 사람 또한 그 하나일 뿐입니다. 어느 일이 더 위태롭고 편안하겠습니까. 당신은 이미 구별했을 것이니 어찌 그대의 일을 후회하지 않으면서 나보고 도리어 이 일을 버리라고 깨우칩니까. 하. 그만둡시다.”

내가 그 말을 듣고 부끄러워 땀에 젖고 놀라서 입이 벌어져 오랫동안 대답할 수 없었다.

오호라, 옛사람들이 벼슬길을 바다에 비유했으나 나는 믿지 않았다. 지금 잠수부의 말로써 시험하니 벼슬길의 위태로움이 바다보다도 심하구나. 그 말을 기록하여 일의 택함이 잘못된 것을 슬퍼하고, 훗날 벼슬길에 오르기를 탐하는 사람들에게 경계하고자 한다.

 

「몰인설」 작가 김진규(金鎭圭) 약력

 조선 후기의 문신, 1658(효종 9)~1716(숙종 42).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다. 본관은 광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아버지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萬基)이고, 어머니는 한유량(韓有良)의 딸이다. 누이동생이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이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1686년에는 정시문과에 급제하였다. 이조좌랑(吏曹佐郞) 재직 중, 1689년 6월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약 5년 후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제거당하자 지평(持平)에 기용되었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깊어지면서, 소론 남구만(南九萬)으로부터 척신(戚臣)으로서 월권행위가 많다는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 1699년에는 동부승지로서 송시열과 입장을 달리 한 윤증(尹拯)을 공박하여 소론과 대립했다. 대사성과 이조참판을 거쳐 1706년 병조참판에 있을 때 소론이 집권하자 2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그 뒤 대제학·공조판서·좌참찬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頒敎文)·교서·서계(書啓)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문집으로 〈죽천집〉, 편저로 〈여문집성 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또한 그림에도 조예가 깊어 산수화, 인물화에 뛰어난 작품을 남긴 인물이다.
거제면으로 유배 와서 죽천기(竹泉記) 몰인설(沒人說) 격사문(擊蛇文)등, 설(說)또는 문(文),기(記)는 물론 많은 산문(散文)을 남겼다. '죽천기(竹泉記)'는 송시열 김진규 김창집 등이 거제 유배생활 동안 생명을 유지해 준, 대숲 샘물 기록이고, 문와설(聞鼃說) 개구리 소리는 죽천 (반곡서원 샘물)에서 여름날 홀로 앉아 개구리 소리를 들으며 지은 작품이다. 그리고 격사문(擊蛇文)은 평소에 저자가 곤충이나 파충류를 상당히 싫어했는데, 거제도에 유배와 자연과 함께 생활하며 뱀에 대한 두려움과 근심을 극복하였으며, 또한 겪고 느낀 바를 대체로 상세히 표현해 냈다. 다소 주관적인 면이 있지만 당시 조선시대 양반 귀족의 관점에서는 그 표현이 세밀하고 획기적이다. 뱀이라는 하나의 파충류를 이 정도 묘사하고 글을 남긴 분은 아마도 조선시대에 저자 외에는 찾기가 힘들다. 정배된 곳인 거처(집)에는 물론이거니와 거처 바로 옆 작은 울안밭에도 뱀이 많다는 걸로 봐서는 거제도에는 참으로 뱀이 번성했고 많이 살았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땅 속에서 새끼를 기르는 모습은 물론, 마치 뱀과 자신이 소통하듯이 표현하며 이 글 속에 나타내었다.

「몰인설」 작품 정리, 의의

전복(全鰒) 따는 잠수부(海南)의 인생론인, '몰인설(沒人說)'은 거제면 죽림포에서 본 잠수인(沒人), 즉 잠수부(해남)의 생활상을 세세히 살폈는데, 전복을 채취하는 방법, 잠수인의 외형적인 얼굴 모습, 긍정적인 잠수인과의 인터뷰 등을 아주 멋지게 표현했다. 당시 신분제도상으로 천하고 힘든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어렵지만 훌륭히 꾸려 나가는 잠수부의 태도에 자신의 유배 상황과 견주면서 지난 세월을 반성하고 깨닫는 그런 글이다. 우리 거제인에게는 이 내용이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아마도 예부터 지금까지 우리 주위에서 많이 보아 온 사실이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시대 거제도에 있었던, 이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해녀보다 해남(海男) 즉 남자들이 잠수하여 여러 가지 해산물을 채취했음을 알 수 있다. 200여 년 전의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보다도 약 100여 년 앞서 해남, 잠수부의 해산물 채취 방법과 생활상을 기록한 글이다.
우리나라 역사상 잠수부(해남)에 관한 상세 기록은 최초이며, 그 사실이 거제도에 있었다는게 참으로 자랑스럽다. 거제도 유배생활 중에 지은 시(詩)들과 각종 기록(竹泉記, 望鷄龍山記, 擊蛇文,沒人說 등)에서 당시 거제지역의 풍습과 거제민의 생활상, 거제 풍경을 잘 나타내어 거제 고전문학 및 유배문학에 큰 기여를 했다. - 몰인설(沒人說) 해남(海男), 고영화(고전문학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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