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시조문학사전_12 수양산 바라보며_성삼문_절의가_내신과 수능을 위한 시조 모음, 시조 원문, 현대어 풀이, 시조 작품 해설, 고전 시조 해설

시조문학사전74편

by 국어벅스 2023. 5. 26. 16:34

본문

국어내신과 수능을 위한 시조 모음

국어 고전시가 시조 문학사전_12 수양산 바라보며_성삼문 _원문_작품 해설, 현대어 풀이, 작품 분석

 

 시조 수양산 바라보며(성삼문)는 세조의 단종 폐위에 항거한 작자의 의지를 은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절의가(節義歌)’로, 주(周)나라의 충신 백이(伯夷), 숙제(叔齊) 고사 인용을 통해 백이와 숙제보다 자신이 더 굳게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적 화자의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세조가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이에 항거한 지은이가 자신의 위치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시조 문학사전 74편 전체

 

 시조 문학사전에는 주요 작품부터 낯선 작품까지 74편의 원문과 현대역, 작품 해제가 실려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목차>를 참고하시어 자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동아출판 고전시가원문 자료집

시조 수양산 바라보며 작품해설

시조 원문 작품해설 <수양산 바라보며_성삼문>

수양산 바라보며 상삼문 원문
수양산 바라보며 상삼문 원문

【현대어 풀이】

수양산을 바라보며 은나라의 충신 백이와 숙제를 오히려 지조가 없다고 꾸짖으며 한탄하게 된다.

차라리 굶주려 죽을지언정 (주나라의) 고사리를 뜯어 먹어서야 되겠는가?

비록 산에 아무렇게나 자라는 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났단 말인가?

 

➡️ 세조의 단종 폐위에 적극적으로 항거한 작가의 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절의가(絶義歌)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중국 은나라의 충신 ‘백이, 숙제’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핵심 정리

갈래 평시조

시대 조선 전기

작가 성삼문(成三問, 1418-1456) 호는 매죽헌(梅竹軒). 세종 때 학자. 충신. 사육신(死六臣)의 한 사람. 문집으로 <성근보집>과 시조 2수가 전한다.

성격 절의가, 충의가, 풍자적, 비판적, 지사적, 의지적

제재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故事)

주제 굳은 절의(節義)의 지조, 단종을 향한 굳은 절개와 지조

출전 청구영언(靑丘永言)

특징 

• 백이, 숙제의 태도를 새로운 시각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절의를 강조함

• 중의법, 설의법을 통해 더욱 완벽한 지조를 부각시킴

중의적 표현과 ‘상식 뒤집기’를 통해 의미를 강화함

중의법: '수양산'은 ①중국의 산 ②수양대군(세조) 이라는 중의적 의미가 있다.

설의법: 중장, 종장의 설의법을 통해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풍유법: 고사 인용을 통해 백이,숙제의절개와 자신의절개를 비교하여 굳은 지조를 드러내고 있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 백이,숙제는 주나라 무왕의 반정을 반대하다가 수양산에 들어가 죽음, 충신의 대표로 일컬어짐.

화자는 충신의 대명사인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절개를 강조하고 있다.

 

☑이해와 감상

  이 시조에서 ‘수양산’은 백이와 숙제가 은둔 생활을 하였다는 중국의 산 이름과 수양 대군(세조)을 동시에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다. 시험에 중의법과 관련하여 자주 출제되는 시조이므로 기억해 두도록 한다. 지조의 표상인 백이와 숙제보다 더 굳게 지조를 지키겠다는 시적 화자의 강한 의지가 담겨 있다.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을 임금으로 섬길 수 없다는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지은 절의가(絶義歌)이다. 이 시조에서 화자는 충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 비판함으로써 자신의 굳은 절개와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또한 고사(故事)에 나오는 ‘수양산’에 중의적 의미를 부여하여, 수양대군에게 협력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중요 시어, 시구의 의미>

초장: 수양산을 바라보면서,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오히려 지조가 굳지 못하다고 꾸짖으며 한탄하고 있다. (중의법)

수양산: 백이, 숙제가 절개를 지키고자 은둔하다 굶어 죽은 중국의 산 이름과 수양 대군(세조(世祖))을 뜻하는 중의법이다.

• 이제를 한하노라: 이제는 충신 백이와 숙제를 의미함. 수양 대군을 향하여 이제(夷齊)보다 자신이 더 굳은 지조를 지녔음을 외치는 표현으로, 화자는 이제가 주나라 땅의 고사리를 캐서 먹었으므로 지조를 철저하게 지키지 않았다고 보고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중장: 차라리 굶주려 죽을지언정 고사리를 뜯어먹어서야 되겠는가? (설의법)

채미:고사리를 캐먹음. 세조의 녹을 먹는 것을 비유함. 

• 종장: 비록 산에 자라는 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누구의 땅에서 났는가? (설의법)

푸새: 산과 들에 저절로 나서 자라는 풀, 세조의 녹봉을 의미함. 백이와 숙제는 구차하게 주나라의 땅에서 연명하며 살았으나 화자는 세조의 녹봉도 받지 않고 절의를 지켰다라는 의미이다.

• 뉘: 주나라 무왕, 수양대군(세조) → 화자의 입장에서 부정적 대상임. 

그 뉘 땅에 낫다니: 고사리 역시 이제가 녹을 받지 않겠다던 주나라의 땅에서 난 것이라는 의미, 즉 고사리마저도 캐먹지 않겠다는 뜻으로 지은이의 철저하고 굳은 절의(節義)의 의지를 보여준다.

 

시상 전개(초장, 중장, 종장)

초장 수양산(수양 대군)을 보며 백이와 숙제를 한탄함. 중의법
중장 백이와 숙제가 고사리로 연명한 일에 대해 비판함. 설의법
종장 백이와 숙제보다 더 굳은 지조를 지키겠다고 다짐함. 설의법

화자의 상황·태도

 화자: 굶주려 죽을 것임. ⇔ 백이·숙제: 고사리를 캐 먹음.

➡️화자의 굳은 절개 강조, 은나라 충신인 백이와 숙제의 절개도 자신의 절개에는 미치지 못함을 드러내면서, 단종에 대한 굳은 지조와 절의를 노래하고 있다.

 

관련 작품 <절의가>

이 몸이 주거 주거 一百番(일백 번) 고쳐 주거
白骨(백골)이 塵土(진토)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
님 向(향)한  一片丹心(일편단심)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 정몽주

➡️ 초장에서 ‘죽다’라는 극단적인 언어의 반복을 통해 굳은 결의와 절의(節義)를 드러내고, 중장에서는 점층적인 가정을 통하여 자신의 의지를 강조한 다음, 종장에서 ‘일편단심(一片丹心)’이라는 주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 작품과 성삼문의 시조는 화자의 굳은 의지를 드러내는 절의가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충신의 대명사, 백이(伯夷)와 숙제(叔齊)의 고사(故事)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는 형제로서 은(殷)나라 말기의 충신이다. 당시 천자인 은나라의 주왕이 주지육림(酒池肉林)을 일삼으며 학정(虐政)을 거듭하자, 그 신하였던 주(周)나라 무왕이 혁명을 일으킨다. 주나라에 있던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신하된 입장으로 군주를 치는 것이 어찌 인(仁)이라 하겠는가?”라며 만류하지만, 무왕은 이를 뿌리치고 주왕을 몰아낸 후 주나라를 세운다. 이에 낙담한 백이와 숙제는 이러한 나라에서는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다면서 “주나라의 음식과 의복은 입지도 먹지도 않으리라.”라고 말하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사리만으로 연명하다가 결국 굶어 죽고 만다. 이로부터 후세 사람들은 충의와 절개를 일컬을 때면 으레 이들 형제를 들어 말하게 되었다. ‘이제(夷齊)’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함께 이르는 말로, 고죽(孤竹) 군주의 아들들이다.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치려고 했을 때, 이들이 무왕에게 간언(諫言)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이제는 자신들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首陽山)으로 들어가 고사리로 연명을 하다 죽었다고 한다.

 

 

시조 기본 개념, 작자층, 시대별 특징

<시조 개념정리>

시조 개념 고려 중엽에 발생하여 고려 말엽에 완성된 정형시. 현재까지 창작되고 있는 문학 갈래
명칭 본래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단가(短歌)로 불렸으나, 영조 때 가객 이세춘이 시절가조(時節歌調)[당시 유행하던 노래]로 부르면서 줄임말인 ‘시조(時調)’가 굳어짐.
형식 3장 6구 45자 내외, 3ㆍ4조 또는 4ㆍ4조의 음수율, 4음보가 기본, 종장의 첫 음보는 3음절로 고정!
흐름 고려후기 - 형식의 정제(평시조)
조선전기 - 다양한 형식(연시조 등장)
조선후기 - 형식의 파격(평민층의 대두와 사설시조 등장)
① 평시조
3장 6구 45자 내외의 글자로 구성된 정형시. 평시조가 두 수 이상이 모여 한 작품을 이루면연시조라고 한다.
(예)
동기로 세 몸 되어 한 몸같이 지내다가
두 아운 어디 가서 돌아올 줄 모르는고
날마다 석양 문 외에 한숨겨워 하노라.  -박인로-
② 엇시조 평시조의 형식에서 종장의 첫 구절을 제외한 어느 한 구절이 평시조보다 길어지는 형태
(예)
천세를 누리소서, 만세를 누리소서
무쇠 기둥에 꽃 피어 열음 열어 따들이도록 누리소서.
그 밖에 억만 세 외에 또 만 세를 누리소서. - 작자 미상의 시조 -
③ 사설시조 평시조의 형식에서 두 구절 이상 길어지는 형태. 엇시조와 마찬가지로 길어지는 구절의 글자 수는 열 자 이상
(예)
나무도 바윗돌도 없는 산에 매에게 쫓기는 까투리의 마음과,
대천 바다 한가운데 일천 석 실은 배에 노도 잃고 닻도 잃고 용총줄도 끊어지고 돗대도 꺾이고 키도 빠지고 바람 불어 물 결치고 안개 뒤섞여 잦아진 날에 갈 길은 천리 만리 남았는데 사면이 검어 어둑하고 천지 적막 사나운 파도 치는데 해적 만난 도사공의 마음과
엊그제 임 여윈 내 마음이야 어디다 견주어 보리요. - 작자 미상의 사설시조 -

 

<시조 작자층>

시조의 작가는 누구? 임금부터 양반, 부녀자, 기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그 작가층에 따라서 주제도 대략 정해진다는 점 명심!
작가가 양반이면 유교적 충의 사상, 부모에 대한 효, 자연 속에서 누리는 즐거움
작가가 기녀이면 임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
작가가 평민이면 탐관오리 비판, 삶에 대한 답답함 해소, 임에 대한 그리움 등등

 

<시조 시대별 흐름>

고려 시대 시조 유교적 충의 사상에 바탕을 둔 절의가, 늙음을 한탄하는 탄로가 등이 있다.
조선 초기 주로 충의 사상을 반영한 회고가, 절의가 등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점차 유교적 이념만이 아니라 자연과 애정으로 주제가 다양화되었다.
조선 후기 작가층이 평민층으로 확대되면서 내용도 유교적 관념에서 다양한 삶의 현실을 표현한 것으로 넓어졌다.
특히 평민층의 사설시조는 현실의 모순을 날카롭게 풍자하거나 고달픈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등 웃음의 미학을 살려 내는 것이 많았다.

 

<조선시대의 평시조>

   이 시기의 시조는 초 · 중 · 종장이 각 3 · 4조, 4음보, 총 45자 내외인 단형시조(短形時調)로 대부분 사대부 계층에 의해 창작되고 향유되었다. 내용 또한 지조, 절개, 자연의 흥취, 안분지족과 같은 사대부의 정서와 가치관을 다룬 경우가 많다. 기녀의 작품들은 모두 평시조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 지금까지 출제된 평시조는 임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을 담고 있는 기녀의 작품들이 많다. 앞으로도 이러한 작품에 주목하면서 문학성이 높은 작품 위주로 학습해 둘 필요가 있다.

주제 작품
부재하는 임에 대한 그리움 【마음이 어린 후(後)니~ _서경덕】
⤷ 임에 대한 애틋하고 간절한 그리움을 담아 표현함
【동지달 기나긴 밤을~ _황진이】
⤷ 의태어의 활용과 기발한 착상으로 임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함.
【님 그린 상사몽(相思夢)이~ _박효관】
⤷ 임에 대한 사랑과 외로움을 귀뚜라미를 통해 은근하게 표현함.
【청초(淸楚) 우거진 골에~ _임제】
⤷ 임의 죽음을 슬퍼하며 그리워함.
충의와 절개 【가마귀 눈비 맞아 _박팽년】
⤷ 임을 향한 일편단심을 자연물에 의탁하여 우의적으로 표현함.
【간밤에 우던 여울~ _원호】
⤷ 여울도 울고 임도 울고 나도 우는 안타깝고 절절한 상황을 표현함.
➡️ 시조와 음악의 연관성
   시조는 원래 옛 선비들이 즐겨 부르던 일종의 대중음악이었다. 특히 영조 때에 시조창이 유행하였는데 평시조, 중머리시조, 지름시조, 사설지조 등의 종류가 있었다. 오늘날에는 음악적 성격이 많이 퇴색되어 시조하면 정형적인 시형(詩型)과 사설을 의미한다고 알고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가곡창 혹은 시조창이라는 곡조의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민요를 음악이면서 문학으로 보는 것과 같이 시조도 문학이면서 음악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시조 문학사전 74편 전체

 

 시조 문학사전에는 주요 작품부터 낯선 작품까지 74편의 원문과 현대역, 작품 해제가 실려있습니다. <목차>를 참고하시어 자료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시조 문학사전 74편 <목차>

1 한 손에 가시를 들고_우탁

2 이화에 월백하고_이조년

3 구름이 무심탄 말이_이존오

4 백설이 자자진 골에_이색

5 이런들 엇더하며_이방원

6 이 몸이 주거주거_정몽주

7 흥망이 유수하니_원천석

8 눈 마자 휘어진 대를_원천석

9 오백 년 도읍지를_길재

10 천만 리 머나먼 길에_왕방연

11 강호사시가_맹사성

12 수양산 바라보며_성삼문

13 이몸이 주거 가셔_성삼문

14 방 안에 혓난 촉불_이개

15 추강에 밤이 드니_월산대군

16 어부단가_이현보

17 묏버들 갈해 것거_홍랑

18 이화우 흣뿌릴 제_계랑

19 마음이 어린 후니_서경덕

20 동짓달 기나긴 밤을_황진이

21 어뎌 내 일이여_황진이

22 청산은 내 뜻이오_황진이

23 내 언제 무신하여_황진이

24 청산리 벽계수야_황진이

25 십 년을 경영하여_송순

26 두류산 양단수를_조식

27 도산십이곡_이황(2)

27 도삽십이곡_이황(1)

28 내 마음 버혀 내여_정철

29 어와 동량재를_정철

30 장진주사_정철

31 훈민가_정철(1)

31 훈민가_정철(2)

32 한거십팔곡_권호문(1)

32 한거십팔곡_권호문(2)

32 한거십팔곡_권호문(3)

33 집방석 내지 마라_한호

34 청초 우거진 골에_임제

35 고산구곡가_이이(1)

35 고산구곡가_이이(2)

36 전원사시가_신계영

36 전원사시가_신계영(2)

37 단가육장_이신의

38 조홍시가_박인로

39 국화야 너는 어니_이정보

40 노래 삼긴 사람_신흠

41 산촌에 눈이 오니_신흠

42 혓가래 기나 자르나_신흠

43 견회요_윤선도

44 만흥_윤선도

45 어부사시사_윤선도(1)

45 어부사시사_윤선도(2)

46 오우가_윤선도

47 독자왕유희유오영_권섭

48 율리유곡_김광욱(1)

48_율리유곡_김광욱(2)

49 병산육곡_권구

50 강산 조흔경을_김천택

51 백구야 말 무러보쟈_김천택

52 농가구장_위백규(1)

52 농가구장_위백규(2)

53 매화사_안민영(1)

53 매화사_안민영(2)

54 금강 일만 이천 봉이_안민영

55 동창이 밝았느냐_남구만

56 청산도 절로절로_송시열

57 님 그린 상사몽이_박효관

58 꿈에나 님을 볼려_호석균

59 마음이 지척이면_작자 미상

60 매화 녯 등걸에_매화

61 개를 여라믄이나 기르되_작자 미상

62 귓도리 져 귓도리_작자 미상

63 나모도 바히돌도 업슨_작자 미상

64 님이 오마 하거늘_작자 미상

65 댁들에 동난지이 사오_작자 미상

66 두터비 파리를 물고_작자 미상

67 바람도 쉬여 넘는 고개_작자 미상

68 벽사창 밖이 어른어른커늘_작자 미상

69 시어머님 며느리 낫바_작자 미상

70 어이 못 오던다_작자 미상

71 일신이 사자 하니_작자 미상

72 창 내고쟈 창을 내고쟈_작자 미상

73 청천에 떠서 울고 가는_작자 미상

74 한숨아 셰한숨아_작자 미상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